주역』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이 64괘를 그리고 괘사를 붙였으며, 주공이 효사를 짓고 공자가 『역전』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주역』의 내용을 검토하면 시기적으로도 사상사적으로도 이 생각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역』에 덧씌워진 선입관을 벗겨내면 600~700년 동안 『주역』이 형성되는 과정이 드러난다. 『주역』은 여러 가지 점술 가운데 하나로, 시초점을 치면서 신에게 물었던 내용과 그 길흉 판단에서 신비하게 적중한 것들이 괘사나 효사가 되어 묶인 것이다. 괘사나 효사의 내용에는 600~700여 년 동안의 시대상황과 인물들이 반영되어 있다. 공자가 저술하였다고 알려진 『역전』은 전국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200~300년의 세월이 지나 한나라 초기에 와서야 완성된다. 『역전』에 등장하는 ‘자왈子曰’ 때문에 『역전』을 공자가 지었다고 하지만, 이는 한나라 오경박사 중에서 역학 박사들의 말을 인용할 때 쓰인 것이다. 공자는 『주역』과 무관하다.
『주역』은 작은 철학사이다.
음양, 삼재, 태극 등은 전국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그 개념이나 용어들이 형성된다. 『역전』에는 음양, 삼재, 태극 등의 용어가 나타난다. 이는 사상사의 흐름과 『역전』의 성립이 궤를 같이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64괘의 괘 배열에서 건괘-곤괘 괘 배열, 군왕-신하의 위계, 태극-음양의 체계는 한무제의 대일통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한무제는 대일통사상을 제시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완성시킨다. 이 과정에 유교가 국교가 되고, 유교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군신간의 위계, 음양의 배후로서 태극의 논리가 탄생한다. 「문언전」, 「서괘전」, 「설괘전」, 「잡괘전」, 「계사전」 등의 용어와 논리에서 한무제의 대일통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오행이 『주역』에 결합되기 시작한다. 『주역』이 한무제의 대제국을 유지하는 논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한무제의 정치이데올로기가 『주역』에 스며들기도 한다. 『역전』은 성립 과정부터 전국시대에서 한나라 초기까지의 철학사이다.
이 책은 1부 『역경』, 2부 『역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역경』의 형성과정을 역사적 자료와 함께 살펴본다. 여러 점술 가운데 『주역』이 살아남아 점술서를 대표하는 과정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시초점을 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주역』이 점술서임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체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초점이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주역』에 대한 각종 오해들을 해명하면서 점술서에서 철학서로의 전환을 다루었다. 『역전』의 10개의 편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그 성격과 사상사에서의 위치를 규명하였다. 아울러 괘상과 괘사 그리고 효사를 분석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주역』의 발전과정을 살폈다.
저자소개
저자 : 이봉호
지리산 근처 함양에서 나고 자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박상륭의 소설에 빠져서 살다가, 철학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철학과에 입학했다. 철학에 눈을 뜨고 소설에 대한 꿈을 버렸다. 이후 철학책 읽기에 빠져서 살았다. 대학과 마을에서 철학 원전 읽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에서 일어나는 질문과 토론의 긴장을 즐긴다. 경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국민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덕성여대, 인천대 등에서 초빙교수와 학술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경기대학교 교수로 있다. ≪정조의 스승, 서명응의 철학≫(2014년 대한민국학술원상), ≪최초의 철학자들 -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을 썼고,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1≫ 등을 공동 집필했다. 번역한 책으로는 ≪도교사≫, ≪도교백과≫, ≪도교사전≫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역경』: 점술들 중에서 승리하다
제1장 『주역』의 기원 1. 『주역』에 대한 올바른 해명 2. 『주역』과 공자의 관계 3. 『주역』의 편장체계 4. 『역경易經』과 『역전易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