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대각 국사 의천(1055~1011)의 시문을 모은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과 의천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모은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의 두 책을 총괄하는 [대각국사집大覺國師集]의 역주본. 국내에 남아 있는 여러 종류의 판본을 비교·검토하여 원문의 오류를 최대한 보완하였고, 상세한 역주를 통해 의천의 종합적 사상과 세계인으로서의 행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의천 연구의 권위자의 해제를 통해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잘못 짜맞추어진 [대각국사집]의 판본 문제가 명확히 해명됨으로써 앞으로 대각 국사 의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저자소개 의천
의천은 고려 제12대 국왕 문종과 이자연의 장녀 인예왕후 이씨의 넷째 아들로 1055년 9월 28일 궁중에서 태어났다. 의천은 문종 19년(1065) 5월 14일 영통사 난원(爛圓, 999∼1066)의 문하로 출가해 화엄교학을 배웠으며 출가 이후 1985년 송나라에 가기 전까지 교장을 모으고 강론과 수학에 힘썼고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유교나 도교까지 섭렵했다. 1085년 제자인 수개, 양변 등과 함께 송나라에 간 의천은 1085년 5월 21일 변경(?京)에 들어가 철종 황제를 만나고, 화엄종 승려인 유성, 진수 정원 등을 비롯해 다양한 종파의 승려들을 방문했다. 의천이 송에서 폭넓게 사상을 교류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사상 체계를 성립한 시기였다. 1086년 14개월여의 입송 구법을 마치고 교장 3000여 권을 수집해서 귀국한 의천은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고 송·요·일본 등지에서 구한 제종교장(諸宗敎藏)을 간행하는 사업에 주력했다. 의천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하려 했지만 인주 이씨인 이자의, 흥왕사 지소의 세력에 밀려 해인사에 퇴거했다가 숙종 즉위 이후 개경의 흥왕사로 돌아와 주지가 되어 천태교관을 강학했다. 이 시기 의천의 불교계에서의 역할은 화엄종과 천태종의 병립을 통해 불교계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의천은 백성의 편익을 도모했고,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했으며, 주전(鑄錢)을 건의해 시행하는 등 숙종의 개혁 정치를 도왔다. 숙종 6년 10월 지병으로 총지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