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개선의 과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동식물들과 그들의 상호 작용, 즉 식물과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미묘한 균형, 기린의 등뼈 무게를 버텨 내는 정밀한 역학 구조, 사물을 움켜쥐고 나무를 기어오를 수 있는 원숭이의 정교한 발 모양, 숲 바닥의 낙엽들 사이에 완벽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아프리카 살무사의 섬세한 피부 무늬 등을 살펴본 뒤, 그것들을 고스란히 미래로 투사한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완벽한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예견할 수 있는 추세가 하나 있긴 하다. 인간이 자연의 미묘한 균형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 말이다. 아마 내가 그 추세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다고 해도 부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미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종들을 절멸시키고 자연 서식지들을 지독할 정도로 파괴해 온 인간이 결국 자멸하고, 그 뒤에 진화가 다시 진행되어 피해가 복구되고 남겨진 빈자리가 메워진다고 보았다. 이 복구 재료는 인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잘 버텨서 인간보다 오래 살아남을 동물들이다. 인간이 해로운 짐승이나 벌레로 여기는 것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개량하고 키운 고도로 분화하고 이종 교배된 가축들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이런 내용들을 전제로 삼아 나름대로 설정한 시기인 5천만 년 뒤의 미래 세계를 살아갈 동물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울러 이 기회를 활용하여 진화와 생태학의 기본 원리들을 상세히 설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사실을 토대로 한 추측이 나왔다. 여기 제시한 것은 확정적인 예측이 아니다. 가능성의 탐구에 더 가깝다.
-저자 서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