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무문관을 사색하다』는 남송南宋 시대의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1183~1260)가 지은 『무문관』의 본칙, 평창, 송을 해독하고 해석한 책이다. 무문관은 공안집의 이름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영화, 수행처의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어떻든 간에 그 주위에는 『무문관』 제1칙 「조주구자」 공안의 “무”가 맴돌고 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4개국의 선원에서 불교 수행자들이 간화선看話禪 수행을 할 때 주로 드는 공안, 혹은 가장 먼저 드는 공안은 아마도 이 “무” 자 공안일 것이다. 무문혜개 역시 수년간 “무” 자 공안을 들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이 공안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무문관』 48칙 공안은 이른바 ‘1,700공안’의 요체를 담고 있고, 또 이 48칙 공안은 “무” 자 공안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다. 『무문관을 사색하다』는 “무” 자 공안을 위시한 『무문관』 48칙의 위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탐구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될 용어는 무-의미non-sense인데, 들뢰즈가 『의미의 논리』에서 자주 언급한 그 무-의미이다. 이 무-의미를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 ‘무의미하다’의 무의미와 혼동하면 안 된다. ‘무-의미’는 의미를 결여함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의미를 생성하게 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선불교의 활구活句는 무-의미의 활구와 의미의 활구, 이렇게 둘로 나뉜다. 『무문관』의 공안들은 곧바로 무-의미로 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미를 거쳐 가는 때도 종종 있다. 이 의미sense 역시 활구이다. 들뢰즈의 “의미”는 의미/사건으로 표현되는 데서 알 수 있듯 순수 생성pure becoming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저자 : 박인성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명예교수. 저서로 『화두』, 『법상종 논사들의 유식사분의唯識四分義 해석』 등이 있으며, 철학 역서로 『질 들뢰즈의 철학』, 『질 들뢰즈의 저작 I: 1953~1969』, 『들뢰즈와 재현의 발생』, 『생명 속의 마음: 생물학·현상학·심리과학』,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후설의 후기 사상을 중심으로』, 『현상학적 마음: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입문』, 『유식사상과 현상학: 사상구조의 비교연구를 향해서』, 『현상학과 해석학』 등이 있고, 불교 역서로 『유식삼십송석: 산스끄리뜨본과 티베트본의 교정·번역·주석』, 『중中과 변邊을 구별하기: 산스끄리뜨본·현장한역본』, 『중변분별론소』, 『유식삼십송 풀이: 유식불교란 무엇인가』, 『니야야빈두/니야야빈두띠까: 산스끄리뜨본』, 『불교인식론 연구: 다르마끼르띠의 「쁘라마나바릇띠까」 현량론』, 『아비달마구사론 계품: 산스끄리뜨본·진제한역본·현장한역본』, 『중론: 산스끄리뜨본·티베트본·한역본』, 『반야심경찬』 등이 있다.



목차





출판사 서평

무문관과 들뢰즈의 조우
의미를 생성하는 ‘무-의미’에 대하여


일상어에서 차이 그 자체를 추구한 선불교의
역설의 언어, 차이의 언어들

아비달마, 중관, 유식, 인명 등 인도불교를 오래 연구해 온 필자는 자신이 중국불교의 한 줄기인 선불교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 『무문관』無門關에 이끌린 이유를 모든 공안집의 공안(화두)이 담고 있는, 차이의 언어인 활구活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도불교든 선, 화엄, 천태 같은 중국불교든 모든 유형의 불교는 붓다의 말씀이 시사하는 차이 그 자체를 전개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동일성에 기반하는 모든 철학을 타파하기 위해 불교는 테라바다 불교든 대승불교든 인도, 티베트, 몽골, 중국, 한국, 일본 등 북방의 나라들에서,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스리랑카 등 남방의 나라들에서 차이 그 자체를 드러내 보이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 모든 나라, 이 모든 불교 중에서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유난히 두드러지는 불교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땅 한국에 있는, 우리가 선禪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맞이하는 불교이다. 모든 유형의 불교가 차이 그 자체를 지향해 왔지만, 일상어에서 차이 그 자체를 추구하고 발견한 불교는 선불교가 유일하다. 선불교의 언어들은 일상어의 사구와 활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활구는 역설의 언어, 차이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1,700공안의 요체를 담고 있는 『무문관』 48칙 공안
그리고 “무” 자 공안의 위력을 섬세하게 탐구하다!

『무문관을 사색하다』는 남송南宋 시대의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1183~1260)가 지은 『무문관』의 본칙, 평창, 송을 해독하고 해석한 책이다. 『무문관』은 같은 이름으로 된 영화가 나오고, 수행처가 생길 정도로 유명한 공안집이다. 무문관이 세간에 영화, 수행처, 화두집 가운데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든 그 주위에는 『무문관』 제1칙 「조주구자」 공안의 “무”가 맴돌고 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4개국의 선원에서 불교 수행자들이 간화선看話禪 수행을 할 때 주로 드는 공안, 혹은 가장 먼저 드는 공안은 아마도 이 “무” 자 공안일 것이다. 무문혜개 역시 수년간 “무” 자 공안을 들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이 공안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할 것이다. 『무문관』 48칙 공안은 이른바 ‘1,700공안’의 요체를 담고 있고, 또 이 48칙 공안은 “무” 자 공안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다. 『무문관을 사색하다』는 “무” 자 공안을 위시한 『무문관』 48칙의 위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탐구한다.


오늘날의 일상어와 철학어로 해석된 『무문관』

공안집(화두집)에는 풀어야 할 문제로 제시된 공안인 본칙本則(고칙古則)은 물론 본칙을 비평하고 해석하는 평창評唱, 그리고 본칙의 요체를 읊는 송頌이 있다. 다른 공안집과 마찬가지로 『무문관』 역시 당송대의 속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 필자는 『무문관』의 본칙, 평창, 송을 오늘날의 일상어와 철학어로 해독하고 해석해 보려 노력했다. 오늘날의 우리 일상어에는 의식, 무의식, 감각, 지각, 영혼, 정신, 물질, 물체 등 철학 언어가 잔뜩 들어와 있다. 일상어로 쓸 때 이런 용어는 의미의 경계가 불분명할 때가 많다. 그래서 특정 철학자의 용어를 써서 이런 일상어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는데, 그에 따라 필자가 택한 철학자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 Deleuze; 1925~1995)이다.

들뢰즈의 철학을 “차이의 철학”이라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들뢰즈는 붓다가 이미 2500여 년 전 자신의 전 사상 체계에서 일관되게 적용한 해체의 방법에 토대를 이루는 차이 개념을 훌륭하게 전개하고 있다. 인도 전통 철학의 이슈와라Īśvara와 아뜨만의Ātman 동일성을 비판하는 붓다의 사상은 서양 전통 철학의 신과 자아의 동일성을 비판하는 하이데거의 차이 개념을 완성한 들뢰즈의 철학에 잘 계승되어 있다.


의미의 결여가 아니라 생성을 뜻하는 ‘무-의미’
공안 해독 과정에서 들뢰즈의 용어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필자는 『무문관』의 공안들을 해독하고 해석하면서 들뢰즈의 여러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중 독자들이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될 용어는 무-의미non-sense이다. 이 무-의미는 들뢰즈가 특히 『의미의 논리』에서 자주 언급한 그 무-의미이다. 이 무-의미를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 ‘무의미하다’의 무의미와 혼동하면 안 된다. ‘무-의미’는 의미를 결여함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의미를 생성하게 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선불교의 활구活句는 무-의미의 활구와 의미의 활구, 이렇게 둘로 나뉜다. 『무문관』의 공안들은 곧바로 무-의미로 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미를 거쳐 가는 때도 종종 있다. 이 의미sense 역시 활구이다. 들뢰즈의 “의미”는 의미/사건으로 표현되는 데서 알 수 있듯 순수 생성pure becoming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핵심 용어인 무-의미, 의미, 현시작용manifestation, 지시작용designation, 함의작용signification, 사건event, 사건 그 자체Event, 순수 차이pure difference, 순수 생성 등 공안을 해독하는 데 동원되는 이들 용어를 숙지한다고 해서 『무문관』의 공안을 모두 정확히 해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용어들을 숙지하고 공안을 대한다면 공안을 해독하는 데는 분명히 도움이 될 터이지만, 공안을 해독해 가는 과정 그 자체는 들뢰즈의 용어를 숙지하는 일과는 다르다.

공안을 있는 그대로 해독해 가는 과정에서 들뢰즈의 용어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공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는 말을 주의해서 듣고, 분별을 해체하며 무분별로 넘어가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톺아보아야 한다.

모든 화두는, 『무문관』 제1칙 조주의 “무”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무”로 귀결되는 과정이라는 제각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화두를 풀 때 “무”로 귀결되는 그 과정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공안을 해독해 가는 이 과정은 우리의 마음을 닦아 가는 수행의 과정이기도 하다.


화두를 푸는 과정은 정견(正見)의 과정
스스로 해독하는 동안 깨달음의 힘을 얻는다!

『무문관』을 접했을 때 필자는 평창과 송을 참고하지 않고 우선은 스스로 본칙을 해독해 보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나름의 독특한 해독을 얻기도 했으나 미심쩍다고 여겨지는 본칙이 있을 때는 무문의 평창과 송을 통해 확실한 해독을 얻었다. 그럼으로써 이미 명확하게 파악했다고 여긴 본칙이라 할지라도 더 충실한 해독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무문관』 화두들에 대한 필자의 해독은 무문의 평창과 송까지 화두로 보고 얻은 결과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48칙을 해독한 것이 아니라, 48 곱하기 3 해서 144칙의 공안을 해독하고 해석한 셈이다.

필자는 자신이 비록 무문의 인도를 받았다 하더라도, 무문의 평창과 송을 그릇되게 또는 애매하게 해독했을 수도 있기에, 필자의 해독을 읽기 전에 먼저 『무문관』의 본칙과 평창과 송을 스스로 해독해 보라고 권한다. 화두를 잡고 풀어 가는 과정은 정견正見(올바른 사유)을 얻는 과정이므로 화두를 푸는 만큼 깨달음의 힘을 얻는다. 이런 과정과 결과가 가능한 것은, 화두가 선불교의 위대한 선언인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의 활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