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간이 이룩하게 될 가장 높은 위업이다. 종교를 넘어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대의 존재성은 지복과 고요함, 평화와 이해, 황홀경으로 흘러넘치고 풍요로워져서, 그대의 삶은 생전 처음으로 진정한 노래, 춤, 축복이 된다. 종교를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축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조직된 종교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진정한 종교가 늘 ‘개인적’ 차원이라는 점을 그대에게 분명하게 밝혀두고자 한다. 진리는 조직화되는 순간 파괴된다. 그것은 교리이자 신학이며 철학이 된다. 그것은 더 이상 ‘경험’이 아니다. 군중은 경험을 모르기 때문이다. 경험은 오직 개인적으로 일어날 뿐이다.
그것은 마치 사랑과 같다. 그대는 사랑을 조직할 수 없다. 따라서 그대는 그 조직이 보살펴줄 것인지, 성직자가 그대를 대신해서 사랑해줄지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일이 종교에 벌어졌다. 사람이 진리를 발견할 때마다 인류의 가장 교활한 자들, 즉 성직자들이 그를 둘러싼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를 축적하고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대가 진리를 알고 싶을 때 그들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을 신의 대리인이라고 칭한다. 그들은 자신을 예언자, 신의 전령과 같은 별별 이름을 붙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으로 임명해놓은 자들이다. 그들은 신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신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착취해왔다.
조직된 종교는 정치의 또 다른 형태이다. 내가 늘 정치를 인간의 가장 타락한 행위라고 비난해왔던 것처럼, 나는 조직된 종교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대는 알 것이다. 성직자와 정치인은 늘 인류에 대한 음모를 꾸며왔다. 그들은 서로를 지지해왔다. 그들은 역할을 분담해서 인간의 세속적인 삶은 정치인이 담당하고 그 통치자로 군림한다. 그리고 인간의 내적인 삶은 성직자가 도맡아서 그 통치자 역할을 한다.
너무나 놀라울 때가 있다! 20세기가 지난 시점에도 사람들이 신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교황이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선언하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대는 성직자라는 올바른 경로를 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에게 직접 다가가서 신에게 고백하고 신에게 기도한다면 수많은 성직자들은 실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그대를 기만하는 일이다. 그대는 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가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돈을 조금 내고-교회에 헌납하거나 사원에 기부함으로써-그들이 그대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 모든 기부금은 성직자의 주머니로 직행한다! 그들은 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교활함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경전을 반복해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내적인 욕망은 신이나 진리가 아니다. 그들은 진정한 구도자가 아니라 영악하고 교활한 착취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