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대혜도경종요』에 대한 장 오래된 기록은 1094년 일본의 영초永超가 여러 고승들이 저술한 논論ㆍ소疏ㆍ주註ㆍ기記 등의 목록을 편집한 『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홍경록弘經錄」 제1 반야부에 ‘대혜도경종요 1권(『대정장』 55권, p.1148 상)’이라 되어 있고, ‘원효찬元曉撰 의대품등依大品等’이라고 주註를 달아 놓았다. 또 같은 곳 아래에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1권一卷, 원효찬元曉撰, 의고록依古錄’이라 되어 있는데, 중복하여 기술하지만 같은 저술일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의 구성과 문장의 서술 방식, 경經ㆍ논論을 인용하는 태도 등에 근거하여 판단할 때, 서사ㆍ간행ㆍ유통 등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형이 있었겠지만, 원효가 저술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법화종요法華宗要
『법화종요』 1권은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로 꼽히는 『법화경』에 대한 원효 대사(617~686)의 저술로, 우리나라 고대 법화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 저술은 원효의 『법화경』 저술 중에서 유일하게 현전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일실되어 남아 있지 않고, 일본 인화사仁和寺에 전승되었다. 『법화경』은 한역경전으로 세 본만이 전하는데, 서진西晋 축법호竺法護가 역출한 『정법화경正法華經』(10권 27품)과 요진姚秦 삼장법사三藏法師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역출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7권 28품), 그리고 이 두 본을 교감 첨삭한 수隋나라 사나굴다?那?多와 달마굴다達磨?多 역출의
『첨품묘법연화경添品妙法蓮華經』(7권 27품)이 있다. 법화신행이나 학문 연구에 있어서 초기에는 『정법화경』이 사용되었으나, 『묘법연화경』이
나온 뒤로는 전통적으로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이 널리 사용되었다
화엄경소花嚴經疏 제3권
『화엄경소華嚴經疏』는 신라 원효元曉(617~686)가 『화엄경』을 주석한 문헌이다. 일본의 원초圓超(?~914)가 편찬한 『화엄종장소병인명록華嚴宗章疏?因明錄』(T55, 1133a), 고려의 의천義天(1055~1101)이 1090년에 편찬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T55, 1166b), 일본의 영초永超가 관치寬治 8년(1094)에 편찬한 『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錄』(T55, 1146b) 등에 원효의 『화엄경소』가 10권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신편제종교장총록』에는 『화엄경소』가 원래 8권이었는데 제5권을 나누고 『종요宗要』를 합해서 10권(T55, 1166b)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동문선東文選』에 전하는 서문과 일본에 필사본으로 전하는 제3권뿐이다. 관문寬文 10년(1670)에 필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화엄경소』 제3권은 『대정신수대장경』 제85권에 실려 있는데, 『한국불교전서』는 이것을 저본으로 하여 『동문선』의 서문을 함께 실었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원효 사상의 특징은 종합과 화쟁이다. 이러한 화쟁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규명한 저술이 『십문화쟁론』이다. 그러나 현존 『십문화쟁론』은 단지 4면으로
이루어진 단편에 불과해 원효의 화쟁 논리를 밝히기에는 부족한 자료이다. 원효 연구자들은 『십문화쟁론』의 10문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 왔으나, 한정된 자료 때문에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었다고 하기는 사실상 어렵다.『십문화쟁론』 연구에 있어서 10문이란 1에서 10까지 열 개의 개별 항목이라는 주장과, ‘10’이란 ‘백가百家’라는 말처럼 복수, 즉 ‘많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라는 견해가 서로 대립한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문화쟁론』의 자료적 검토와 함께 비록 단편으로 남아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