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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소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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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 34,200원
저자/출판사 남하정 / 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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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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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소만록』은 4색 당파 중 남인(南人)계를 대표하는 당론서이다. 저자인 남하정(南夏正, 1678~1751)은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격화되었던 17세기 후반~18세기 중반을 살면서 직접 목도했던 정국동향을 역사적 관점에서 그 연원을 고려하는 가운데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하였다. 이로써 서인·노론에 의해 왜곡 기술된 사실(史實)을 바로잡고, 이를 토대로 남인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여, 조정에 등용될 명분을 획득하고, 탕평(蕩平) 정국에 참여하여 자파의 정치지향을 구현하고자 했다. 『동소만록』에서 주요하게 다루었던 주제로는 선조대 기축옥사(己丑獄事, 1589)와 숙종대의 환국(換局)을 들 수 있다.



저자소개

저자 남하정(南夏正,1678~1751)은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시백(時伯), 호는 동소(桐巢)이다. 문종대 좌의정을 지낸 남지(南智)의 후손으로, 남수교(南壽喬)와 진주(晉州) 강씨(姜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학문에 전심하여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달하였다. 1714년(숙종40)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경기도 진위현(振威縣) 동천(桐泉)의 구장(舊庄)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사대춘추(四代春秋)』와 『동소만록(桐巢漫錄)』 등이 있다. 『동소만록』은 근기(近畿) 남인(南人)계를 대표하는 당론서로서 이익(李瀷) 등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목차

머리말 
범례 
해제 
동소 선생 약전(桐巢先生略傳) 
권1 
태조와 신덕왕후 
정종의 묘호 
현덕왕후 위호 회복 
단종 위호 회복 
폐비 윤씨와 갑자사화 
단경왕후 위호 회복 
이준경의 붕당 경고 
율곡의 행적 비판 
기축옥사의 전말 
정철의 자품 
송익필 집안 내력 
기축옥사와 송익필?정철 
최영경과 기축옥사 
기축옥사 책임 공방 
정개청과 기축옥사 
이이와 성혼 비판 
윤선거의 정인홍 비판 
정철 당여 처벌 및 복권 
성혼 행적 비판 
윤선거의 성혼 변론 
조헌과 이발의 우의 
이항복의 이발 형제 신원 
류성룡의 공평 판결 
성문준의 성혼 변론 
안방준의 성혼 변론 
단거론 대 병거론 
조헌과 정철의 우의 
계사능변과 성혼 
류성룡 관련 일화 
당쟁의 폐해와 임진왜란 
양현종사 추이 
서궁 유폐와 인조반정 
유몽인 관련 일화 
인조의 장릉 이장 
이귀의 딸과 인조반정 
이해의 반정공신 비판 
조경과 이명준의 간쟁 
봉림대군의 처신 
남이흥의 한탄 
강홍립 종복 언복의 간언 
인성군 처벌을 둘러싼 논란 
홍서봉의 행실 비판 

권2 
척화와 주화 
김시양의 선견지명 
참화 속 백성들 
효종의 너그러움 
이계의 억울한 죽음 
김류 관련 일화 
박장원의 정직함 
조경과 남이웅 일화 
강석기와 강빈 옥사 
효종 관련 일화 
송시열과 북벌 그리고 상례 
최석정의 윤증 제문, 최창대 변론 
송시열의 북벌 촌평 
현종대 예송논쟁 
이유정 모반 사건 
한당과 산당의 대립 
허적 관련 일화 
김석주 관련 일화 
김익훈 묘소 침탈 
김석주 묘소 이장 
유혁연의 문장력 
이태서의 시문 
이계현의 연조비가 
허목 관련 일화 
송시열과 윤휴의 갈등 
김수홍에 대한 비난 
현종에 대한 비난 
송시열과 이유태 
송갑조 행적 비판 
송시열 관련 일화 
회니시비 
김수항?김창협 관련 일화 
박세채 관련 일화 
사문난적 논란 
이상?이재 관련 일화 
권상하 관련 일화 
서인의 권력의지 
송시열의 쌍수정비 음기 
권시 관련 일화 

권3 
숙종대 기사환국의 전말 
정시한의 폐위 반대 상소 
박상경의 장희재 처벌 요구 
남인의 무고함을 밝힌 남구만 
숙종대 갑술환국의 전말 
경종보호 노력 
김춘택의 정치공작 
이잠의 세자보호 상소 
김춘택 관련 일화 
남인 집권 촌평 
숙종대 정유독대의 전말 
경종을 노리는 삼급수 
영조대 위시(僞詩) 사건 
이소훈 독살 사건 
영조대 경술년 옥사 
김진상과 노론 4대신 
박윤동의 경종 만장 
강박 관련 일화 
윤지술과 삼현사 
서원 남설의 폐해 
이광좌 관련 일화 
이태좌 관련 일화 
삼급수, 역모의 근원 
영조대 무신란의 전말 
이현일 상소를 둘러싼 논란 
이관후의 송인명 탄핵 상소 
민백상의 도량 
유혁연의 명성 
삼수의 남은 독 
이홍모의 절개 
김화윤의 선행 
대탕평론 비판 
이맹휴의 등용과 건극 확립 
요성의 유군덕 일화 
요동의 임본유 일화 
풍윤의 곡씨 일화 
조현명과 건륭제 
조중회와 육상묘 
조태상의 조중회 비판 
사색 분당의 전말 
남인의 분화 
장씨 부인의 결기 
홍중기의 조덕린 후장 
천연두 귀신은 없다 
최동원 부인의 정절 
서평공자와 단적들 
영조대 전염병 창궐 

부록 
태조의 내기바둑 
정종의 묘호 
이이의 실정 
성혼의 행실 비판 
정경세의 안목 
이흥발의 처세 
정철의 행실 비판 
송익필의 인사청탁 
허견의 자품 
숙종대 경신옥사 
이발 관련 인사 
정개청 관련 일화 
백사집 훼판 
양사언의 모친 일화 
홍성민 관련 일화 
이희 관련 일화 
이항복의 청렴함 
조헌과 안방준 
광해군대 성릉 추봉 
정인홍의 폐모 논의 
이만의 상소 
박장원의 우의 
이경여와 윤선도 
갑인예송 
허적과 잠상 사건 
정태화의 예지력 
송시열 관련 일화 
송주석의 교만함 
윤선거와 신상 
윤증의 비문 요청 
김석주 관련 일화 
숙종 신사년 혜성 출현 
남구만 관련 일화 
이현석의 강산풍월도중기 
남인의 신론 평가 
당색별 평가 
정인홍의 자품 
권시 관련 일화 
당론 비판 
이광좌의 말년 
허적 관련 일화 
영조대 이의풍 사건 
홍중기의 향전 판결 
영조의 이지억 중용 
영조대 엄택주 사건 
김석주의 정탐정치 
장붕익의 부당한 처결 
역귀는 없다 
송시열 관련 일화 
명종의 성덕 
북벌에 힘쓴 윤휴 
조현명의 윤광신 구원 
합강정 현판 

발(拔) 
桐巢漫錄 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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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선시대 당쟁의 실제는 어떠했는지 당시 사람들의 육성으로 들어본다!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당파싸움, 곧 당쟁의 원인과 과정, 결과는 무엇일까? 
조선시대의 정치사는 16세기 붕당의 형성에 이어 정파 상호간의 대립과 갈등을 축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17세기 붕당정치기, 18세기 탕평정치, 19세기의 세도정치는 그러한 정치의 특질을 반영하여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러한 조선시대 정치사는 개별 시기 사상사, 학술사의 변화, 그리고 제 정치세력의 성장 및 사회경제적 변동과 연관하여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정치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더욱더 풍부한 역사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당파성론이나 당쟁망국론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한때 붕당정치론이 제기되면서 붕당 간에 현상적으로 공존하는 양상을 부각시켜 당쟁망국론을 극복하기도 했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대립의 요인 및 필연성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하였다. 즉 정치적 대립은 왜 일어났으며, 그 갈등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천착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이때 주목되는 사료가 당론서(黨論書)이다. 
당론서가 본격적으로 편찬된 시기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대립이 격화되고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열된 17세기 후반 이후였다. 당론서가 다룬 주요 내용은 붕당이 형성된 이래로 중앙정계에 큰 영향을 끼쳤던 정치적 사안을 중심으로 개별 정파의 입지를 유지?강화시킬 수 있도록 필요한 상황설명과 논평들이었다. 즉 당론서에는 해당 시기 정계와 학계를 주도했던 인물들의 구체적 정치 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실 인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관, 정치적 과제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모습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이나 개인 문집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당론서만이 갖는 고유한 장점으로, 정치사 전개 과정에서 붕당의 이합집산, 개별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 및 학문적 입장의 상관성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 『동소만록(桐巢漫錄)』은 4색 당파 중 남인(南人)계를 대표하는 당론서이다. 저자인 남하정(南夏正, 1678~1751)은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격화되었던 17세기 후반~18세기 중반을 살면서 직접 목도했던 정국동향을 역사적 관점에서 그 연원을 고려하는 가운데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하였다. 이로써 서인·노론에 의해 왜곡 기술된 사실(史實)을 바로잡고, 이를 토대로 남인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여, 조정에 등용될 명분을 획득하고, 탕평(蕩平) 정국에 참여하여 자파의 정치지향을 구현하고자 했다. 『동소만록』에서 주요하게 다루었던 주제로는 선조대 기축옥사(己丑獄事, 1589)와 숙종대의 환국(換局)을 들 수 있다. 
책에서는 먼저 기축옥사는 서인 송익필(宋翼弼)의 사적인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이를 계기로 정치적 열세를 면치 못한 서인들이 정국을 장악한 사실을 부각시켰다. 아울러 남하정은 기축옥사로 인해 서인내 분열의 조짐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혹독한 옥사처리 과정에서 악화된 여론은 관련 인사들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되었다. 이에 그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정철(鄭澈) 가문과 성혼(成渾) 가문 간 대립이 촉발되었고, 마침내 분열의 계기로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남하정이 숙종대 환국에 대해 주목한 이유는 명의죄인(名義罪人)의 혐의를 벗기 위해서였다. 명의죄인은 숙종대 기사환국(己巳換局, 1689) 당시 남인 당국자들이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방관하여 국정을 어지럽혔다는 혐의에 붙여진 죄목이었다. 이는 누대에 걸쳐 남인의 출사(出仕)를 가로막는 정치적 걸림돌이자 남인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남하정은 폐위의 결정권은 오직 국왕에게 있다는 사실을 관찬(官撰) 사료를 인용하며 새롭게 주지시켰고, 남인의 위상 제고를 위해 장희빈 사후 경종(景宗)보호 노력을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열세에 처했던 남인의 처지를 타개하고, 자파의 정치적 역할과 역량을 재평가하여 영조대 탕평정국에서 남인의 정국참여를 기대하였다. 
한편 남하정은 시기별 서인 집권의 부당함과 송시열(宋時烈)을 위시한 주요 정론가들의 공적인 실책 및 개인적 비위, 노소 분당(老少分黨)의 계기들에 대해 서술하였다. 특히 그는 노론과 소론의 분기 과정에서 양측 간의 갈등이 고조된 주요 원인의 하나로 사상(思想) 대립에 주목하였다. 당시 노론측 인사들은 주자학을 존숭하는 학문태도를 명분의리론으로 치환시켜 자파의 정치력을 극대화하면서, 정파 간 공존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소론은 주자학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허용하면서 남인 주요 인사들과 연계를 모색하였다. 결정적으로 노론이 비법적(非法的)인 수단을 통해 남인을 제압하는데 반대하면서 그 간에 쌓인 갈등이 폭발하여 분기가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남하정 등 당시 남인들의 각 당파에 대한 평가는 다음의 구절에 잘 드러난다. “우리 동토는 예부터 군자의 나라였으나, 당론이 서로 어긋난 뒤 풍습이 나눠지고 내려 받은 성품이 각기 다르게 되었다. 노론은 굳세고 사나움이 많았고, 소론은 진실됨이 적었으며, 소북(少北)은 꾸미기를 좋아하였다. 오직 동인만 유순하고 착해서 어리석은 듯 보이지만 동토의 본래 풍속을 잃지 않았다.” 또한 서인의 영수였던 이율곡과 성혼, 정철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들의 언급과 노론의 영수 송시열에 대한 인간적, 정치적 부정 일색의 평가들은 당시 각 당파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고, 정치적 대립이 세대를 이어 쌓임으로써 얼마나 상대편 당인들을 혐오하고 미워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권3 ?장씨부인의 결기? 등) 
그리고 당쟁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당색 간에 서로 시기하여 마음속엔 의심이 가득 찼으며, 간과 쓸개가 초나라와 월나라 사이처럼 되어 가까이 있으면서도 천리 바깥에 있는 것처럼 서로 멀리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사대부뿐만 아니라 심지어 관사의 하인, 민간의 노비에 이르기까지 서로 등을 돌리지 않음이 없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시끄럽게 쫓아다니며 싸우는데 몰두하여 광폭한 파도와 풍랑 속에 빠져서 물가를 바라보고 언덕에 오르는 자가 없으니 모두가 빠져 죽을 뿐이었다.” 오늘날의 정치권은 이와 얼마나 다른지 새겨볼 만하다. 
이처럼 『동소만록』에는 해당 시기 정계와 학계를 주도했던 인물들의 구체적인 정치 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실 인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관, 정치적 과제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모습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이는 실록이나 개인 문집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당론서 만이 갖는 고유한 장점으로, 정치사 전개 과정에서 붕당의 이합집산, 개별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 및 학문적 입장의 상관성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한마디로 『동서만록』은 조선시대 정치사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바로잡는데 적합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조선시대 정치사 연구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싸운 당쟁사는 있지만, 공적인 사회통합이나 진보 문제를 놓고 싸운 정치사는 없다는 인식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 혹은 개인의 전기(傳記)를 강조해서, 구조적 설명 같은 필연성보다 순간적인 인간 심리의 변화 같은 우연성을 정치사로서 부각시켰다. 한편 붕당정치론(朋黨政治論)이 제기되면서 붕당 간에 현상적으로 공존하는 양상을 부각시켜 당쟁망국론을 극복하기도 했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대립의 요인 및 필연성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하였다. 즉 정치적 대립은 왜 일어났으며, 그 갈등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천착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정치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동소만록』을 위시한 주요 당론서에 담겨 있는 풍부한 역사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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